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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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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3일천하 흔히 갑신정변은 민중의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여서 실패하였다고 하는데 갑신정변의 3일 천하에 대하여 알아보자. 1882년 군인봉기를 진압한 청은 조선이 속국임을 내세워 조선 내정에 간섭했고 이에 따라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가 들은 친청화하면서 개화정책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 때부터 정부안에서 개화정책을 두고 분열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동도서기론인 개화파(온건개화파)는 수구적인 민씨 일가와 손을 잡고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점차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반면에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는 이에 불안을 느끼고 개화를 더욱 서둘렀다. 이들은 1882년 후반 미국 등을 대상으로 개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고자 차관 교섭을 벌이고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
이자겸의 난 고려 중기 이자겸의 난을 시작으로 묘청의 난을 거치면서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자겸의 난에 대하여 알아보자.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뒤 100여 년간 평화가 지속되었다.평온한 가운데 귀족 중심의 보수적 문화가 널리 퍼지고 귀족들 사이에서는 풍요로움과 안일함을 찬미하는 시문을 짓는 일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 관직을 독점하고 왕의 측근이나 외척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문벌 귀족들이 나타났고 12세기에 이르러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한 난이 일어났다. 먼저 1126년 이자겸의 난이 었다.이자겸은 다른 귀족과 신진 관료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그는 인주 (지금의 인천)이씨로 왕실의 외척이었는데 그의 조부인 이자연의 세 딸 이 문종의 왕비가 되었고 이자연의 손녀들도 순종,선정의 왕비가..
실학사상 실학자 실학사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실학의 사회개혁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리학은 조선후기의 가장지배적인 사상이었다.그러나 성리학은 이 시기 사회변화를 포괄하거나 사회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만한 유연성을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어나 새로운 학문풍조가 있었는데 1930년대 국학,조선학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되면서 이를 실학이라 명명하였다. 조선후기에 들면 먼저 주자학에서 이탈하려는 경향을 보였다.허목은 송대의 성리학보다 공자,맹자가 살던 시대의 원시유학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그리고 윤휴와 박세당은 주자의 해석을 부정하여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소론 계통의 학자들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양명학을 받아 들였는데 이는 명의 학자 왕양명의 사상으로서 성리학의 한 흐름이지만 주자와는 다른 해석을 하였다. ..
조선후기 농업 이앙법 견종법 조선은 임진왜란이후에 농업의 큰 변화가 있었는데 농업의 발전과정과 이 과정에서 농민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 노동자로 전라하기도 하였는데 그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자. 조선후기에는 전쟁이후 1/3까지 줄어든 경지를 다시 일구었고 개간으로 경지면적을 늘렸다. 전국의 수리시설이 확충되어 논농사에서 이앙법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논 면적이 절대적으로 많은 경기고,하삼도에 보편화 되었다. 이앙법은 김매기 노동력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지만 가뭄에는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단점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적파법은 가뭄에는 강하지만 김매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이앙법의 장점이 더 크기 때문에 이앙법이 확대 보급되어 생산력이 늘어났으며 다음에 봄 모내기 이전까지 비어 있는 논에 보리를 재배하는 이모작도 가능해졌다. 이앙법이 보급되..
신채호 조선상고사 우리나라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신채호에 대하여 알아보자. 신채호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주로 연구 했는데 고조선,고구려,발해에 대해 집중연구하면서 이전 역사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과 내용으로 우리 역사를 설명했다.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떠받들던 김춘추를 외세를 끌어 들이는 장본인이라고 비판했고 통일 신라 시대는 ‘발해·신라 양국’시대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특히 유교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우리 고유의 사상은 ‘낭가사상’이라고 하였는데 낭가사상은 단군 때부터 시작되어 신라의 화랑제도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 사상을 말한다. 신채호의 고대사 연구는 일본의 식민학자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시 일본 학자들은 우리 역사를 꼼꼼히 연구 했는데 이 까닭은 일본의 식민지를 돕기 위해서였다. 조선을 제대로..
무신정변 고려시대 무신들에 의해 벌어진 무신정변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려 무신정변은 문신이 무신에 대한 차별에서부터 출발한다. 고려시대에는 처음부터 무신을 천대한건 아니고 고려초기에는 문신과 무신을 동등하게 대우했다.문신은 정치를 맡고 무신은 군사에 관한 일을 맡으면서 동등하게 역할 분담을 하였는데 문신이 중심인 문벌 귀족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무신들에 대한 차별이 심화 되었다. 문신들은 무신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고 심지어는 멸시와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은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갈아 치우고 정권을 잡았는데 이것이 무신정변이다. 요(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뒤로 별다른 전쟁이 없게 되자 무신들은 왕과 문신 등의 호위병 노릇을 해야 했다. 문신들이 왕과 어울려 잔치를 벌일 때 시중을 들고 때로는 구경거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