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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무신정변

 

고려시대 무신들에 의해 벌어진 무신정변에 대하여 알아보자.

고려 무신정변은 문신이 무신에 대한 차별에서부터 출발한다.

고려시대에는 처음부터 무신을 천대한건 아니고 고려초기에는 문신과 무신을 동등하게 대우했다.문신은 정치를 맡고 무신은 군사에 관한 일을 맡으면서 동등하게 역할 분담을 하였는데 문신이 중심인 문벌 귀족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무신들에 대한 차별이 심화 되었다.

문신들은 무신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고 심지어는 멸시와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은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을 갈아 치우고 정권을 잡았는데 이것이 무신정변이다.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뒤로 별다른 전쟁이 없게 되자 무신들은 왕과 문신 등의 호위병 노릇을 해야 했다.

문신들이 왕과 어울려 잔치를 벌일 때 시중을 들고 때로는 구경거리로 칼춤이나 오병수박희(오늘날의 택견)까지 보여주어야 했다.

의종은 궁궐 밖 행차가 잦았다.의종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과 가까운 환관과 문반 관료들을 개인적으로 우대 했다.왕과 가까운 이들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호위를 맡은 무신들은 이에 대하여 불만이 많았다.

1170년 가을 의종은 개경 근처의 보현원으로 행차 했다.정중부,이의방,이고 등 무신들은 왕과 문신을 호위하고 갔다.

이날도 오병수박희(지금의 택견) 자리에서 무신 중에 이소응이라는 나이 많은 장군이 정3품의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이소응이 젊은 문신과 겨루게 되었다.

나이가 많은 이소응은 적당히 겨루다가 힘이 부쳐서 기권을 했다

그때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한뢰라는 젊은 문신이 이소응의 뺨을 후려쳤다.

이소응은 졸지에 뺨을 맞고 그만 섬돌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왕을 비롯하여 구경하던 문신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이 꼴을 본 정3품 상장군 정중부는 괘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에 정중부가 서른아홉 살로 궁궐에서 왕의 처소를 지키는 견룡군장교로 있을 때 정중부는 왕을 모시고 귀신을 쫓는 의례인 나례에 참석 한 자리에서 갑자기 내시 김돈중이 정중부의 턱밑에 촛불을 들이대는 바람에 정중부가 애지중지 하던 수염이 타버렸던 생각을 하면서 정중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소응은 비록 무신이지만 벼슬이 정3품인데 어째서 이렇게 심한 모욕을 주는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지고 왕의 행차는 오문을 떠나 보현원에 도착했다.

정중부는 문신들의 횡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문신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자고 이의방과 이과와 함께 결의 하였다.

의종은 보현원 안으로 들어가고 따르던 문신들이 물러 나왔을 때 이의방과 이고는 문신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후 무신들은 궁궐을 손에 넣고 의종은 거제도로 태자는 진도로 귀양을 보낸 사건이 무신정변이다.

무신정변이후 의종을 쫒아내고 그이 동생을 왕(명종)으로 앉혔다.정변을 일으킨 무신들은 공신이 되어 주요 관직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무신정변이후 약 100년 동안 무신 정권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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