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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살수대첩 안시성 싸움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당나라와 약 70년에 걸쳐 연거푸 큰 전쟁을 치렀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강대국이다.

612년 여름 수나라 양제는 백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 왔다.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은 적군을 피로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지는 척 하면서 자꾸 후퇴를 했다.그런데 뒤따라온 수나라군이 평양성 근처까지 도착했을 때 을지 문덕은 적장 우중문에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낸다.

귀신 같은 책략은 천문을 꿰뚫고/절묘한 계락은 지리를 통달했도다/ 싸워 이기공이 이미 높으니/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지쳐 있던 수나라 군대와 적장 우중문은 이 시를 보고 체면이 섰다는 듯이 철수를 시작했다.

그래서 수나라 군대가 살수(지금의 청천강)을 반쯤 건넜을 때 고구려군은 수나라군의 뒤를 들이 쳤다.강물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고 수나라 군대는 전멸하다시피 했는데 이싸움이 살수대첩이다.수나라 양제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 때문에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의 원성만 높아지고 결국 수나라는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 섰다.

살수대첩이 있은지 32년 뒤인 644년 이번에는 당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당태종은 당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공이 컸으며 형인 건성을 죽이며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당태종은 수 양제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것을 보복하고 다시 황제국으로서 연개소문의 전왕 시해 사건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대군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당나라 군대는 요동 반도에 자리 잡고 있던 안시성을 포위 했다.안시성은 작은 성이지만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 였다.이곳을 빼앗기면 요동은 완전히 당나라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시성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지휘 아래 성 안의 백성들과 군사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싸웠다.

당태종은 별별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당 태종은 할 수 없이 퇴각하게 되었고 안시성을 지키던 고려려 군은 안시성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이후 보장왕 8년에 당태종이 죽음으로써 당나라는 한동안 대규모의 전쟁도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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