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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통일신라와 발해

 

신라의 삼국통일과 요서지방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이 건국한 발해에 대하여 알아보자.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반도의 남쪽을 통합하는데 그친 불완전한 통일이었다.그러나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당 군을 축출하는 전쟁을 수행하고 지배 영역과 인구가 크게 늘어난 신라는 통치체제를 다시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요서 지방에 살고 있던 고구려 유민들은 대조영의 주도로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요하를 건너 동북지역으로 이주하며 말갈족을 규합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건국초기에 당과 맞서면서 국가 기반을 확립하였고 말갈 세력을 복속시키며 요하지역에 까지 진출하였다.

영역을 크게 확장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차지한 발해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다.

발해는 초기에 신라나 당에 적대적 태도를 취했으나 당 중심의 질서가 안정되면서 당,신라,일본과 활발히 교류하였다.발해의 정치구조는 36부체제로 구성되었고 51562주의 지방행정체제도 갖추었다.

발해 문화는 고구려와 당,말갈족의 토착문화가 복합되어 있었으며 국제적인 귀족문화를 이루었다.발해는 926년 거란의 기습으로 멸망하였고 이때 수천의 발해 유민이 거란의 지배를 벗어나 고려로 넘어왔다.

한편 삼국통일 후 신라는 왕권을 강화하고 유교 이념에 의한 정치를 내세웠다.신라는 전국을 9주를 두고 5소경을 두어 지방체제를 강화하고 통일전쟁 과정에서 늘어난 군사력을 9서당 10정으로 정비하였다. 또한 문무 관료에게 관료전을 지급하여 귀족들의 수조권을 보장하였다.

귀족들은 대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백성들을 다스렸다.

농민들은 조세와 공물,부역을 담당하였다.지방 지배와 조세 수취를 위해 촌을 단위로 인구와재산 상태를 상세히 파악한 민정문서(촌락문서)가 작성 되었다.

신라는 통일이후 당과 관계를 개선하여 국교를 정상화하고 당의 문물과 서역문화를 수용하여 문화의 성장을 이루었다.

신라인은 당과 일본을 중계하는 무역을 담당하였다. 장보고는 9세기 초 청해진을 설치하고 당,일본,인도,서아시아,지역 등과의 중계 무역도 독점하였다.

신라는 정치적으로 유교이념을 내세우고 국학을 설치하여 경전과 한문학을 교육하고 독서삼품과를 두어 관료를 선발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통일 후 1세기 동안 불교학연구가 활발하여 융성한 불교문화를 이루었다.

불교이해의 새로운 기준을 학립한 원효는 일심의 논리로 불교사상 간 대립을 해소하였으며 정토신앙을 전파하여 일반민들로 불교를 믿게 되었다.특히 신라말에는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이 들어와 지방에 널리 확산되었다.

신라 말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중앙 권력의 약화로 귀족들의 반란과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지방에서는 호족이라고 불리는세력이 나타나 성주,장군을 칭하며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농민봉기가 신라를 휩쓰는 중에 후백제와 태봉이 건국되어 후삼국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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