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불교를 받아 들이고 공인하게된 배경에 대하여 알아보자.
삼국시대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똑같지 않았다.고구려와 백제는 별다른 마찰 없이 불교를 인정했지만 신라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신앙이 강하게 남아 있어 그것에 뿌리를 둔 귀족 세력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서 불교를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신라 또한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신라 법흥왕은 사사건건 왕에게 맞서는 귀족들을 눌러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아무소리 못하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해 고심해서 얻은 결론은 지금 필요한 것은 이전의 것을 제압할 만한 새로운 종교인 불교라고 판단하였다.
이웃나라인 고구려와 백제는 벌써 150년 전에 중국에서 불교를 들여와 나라가 인정하는 종교로 삼고 있었다.
유독 신라만 귀족들의 반대로 불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신라 귀족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신앙,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신,조상 신을 숭배하기를 고집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조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신앙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불교는 왕의 권위를 높이는데 아주 쓸모가 있었는데 그때 중국에서는 ‘왕이 곧 부처’라고 하면서 불교로 왕의 권위를 신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법흥왕은 부처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유일한 절대자이니만큼 왕이 부처를 섬긴다면 왕에 대한 도전을 누룰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게 분명했다.이때 왕의 고민을 알아챈 이차돈이 조용히 왕을 찾아 “제가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으니 저를 희생양으로 삼아 저들을 제압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후에 이차돈은 천경림으로 가서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다고 하면서 나무를 베어내었다.천경림은 하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숲이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화를 내면서 법흥왕에게 몰려 갔다.그러자 법흥왕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고는 이차돈을 잡아들이라고 했다.
이차돈은 왕을 기쁘게 하려고 혼자 일을 꾸몄다고 대답하였다.이 모든 것이 이차돈과 법흥왕이 비밀리에 약속한 것이었다.왕은 이차돈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삼국유사〉에는 그의 목을 베자 붉은피 대신 ‘흰 젓이 한 길이나 치솟고 ,하늘이 캌캄해지고 땅이 진동하며 꽃비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법흥왕은 귀족들에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왕에게 대든 죄로 모조리 처형하겠다고 하니 귀족들은 엎드려 빌었다.
이에 왕은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으니 이차돈이 나를 위해 절을 지으려다가 죽었으니 내 그 절을 완성하여 이차돈의 혼을 위로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였다.이에 귀족들은 하는 수 없이 천경림에 절 짓는 일을 찬성 했다고 한다.
이차돈의 죽음의 희생으로 인하여 귀족들과 법흥왕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져서 신라는 공식적으로 불교를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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