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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안시성 전투 양만춘

고구려 시대 당나라 수십만 태종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한 무명의 안시성 성주의 전투에 대하여 알아보자.

수나라 양제는 살수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열 차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그때마다 용맹한 고구려 군에 의하여 패배하고 말았다.

내란까지 겹친 수나라는 결국멸망 하였고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이 중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당나라는 처음에는 수나라의 멸망을 교훈삼아 고구려와 화친 정책으로 충돌 없이 지내다가 당태종이 국력을 기른 후 호시탐탐 고구려를 노리게 되었다.

이때 고구려에는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고 북방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장성을 쌓았으며 신라의 당항성을 공격하고 신라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켰다.

그러자 고구려를 두려워한 신라에서는 당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당태종은 이를 구실 삼아 고구려 정벌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당태종은 수양제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것을 보복하고 황제국으로서 연개소문의 전왕 시해사건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대군을 동원하였다.

처음 싸움은 보장왕 4년 여름에 요동성을 중심으로 한 건안성,개모성,비사성,신성 등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함락되었고 고구려는 요동성마저 한 달 전투 끝에 함락되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성주 양만춘이 지키는 안시성을 공격하였으나 안시성에는 양만춘을 비롯한 성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당태종과 죽음의 항전을 하면서 안시성을 지켰다. 당태종의 3개월에 걸친 7차례의 공격에도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당태종 군사들은 안시성 옆에 높은 돛대를 쌓아서 안시성의 상태를 살피려 하였으나 안시성 군사들은 밤에 몰래 성문을 열고 나가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당태종은 포기하지 않고 50만의 병력을 60일 동안이나 동원시켜서 성 앞에 높다란 산을 쌓아 안시성의 높이만큼 흙을 쌓았다.

이를 안 안시성 성주는 산을 무너뜨릴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에 옮겨 적군이 쌓아놓은 산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다.

이와 같은 안시성의 집요한 항전과 작전에 말려들어 장기전에 들어간 당나라 군은 보급로 마져 끊기게 되면서 고구려 군의 역습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칭송을 받던 당태종도 안시성 전투에서 밀려 철수를 하게 되었다.영웅적인 항전을 계속한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마침내 당태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 후 당태종은 두 차례에 걸쳐 고구려 침략을 강행했으나 그때마다 고구려 군에 의해서 격퇴되었다.

보장왕 8년에 당태종이 죽음으로써 한동안 대규모의 전쟁을 도발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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