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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게 온몸이 털로 덮여 있던 매머드 같은 몸집 큰 동물들이 사라지고 사슴, 멧돼지 같은 작고 날쌘 동물들이 등장했다. 또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나 조개 같은 것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적응해 나갔다.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빗살무늬 토기의 특지에 대하여 알아보자.

신석기시대는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인류 역사의 첫 번째 혁명적 사건이라고 해서 신석기 혁명이라고 한다.

신석기인들은 작고 빠른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활과 화살을 만들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와 작살, 그물도 제작했다. 하지만 사냥과 물고기 잡이 만으로는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의 수도 전보다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주로 사냥을 하며 곡식은 자연에서 나던 것만 채취해서 먹었으나 이제는 땅에 직접 씨를 뿌려 조, 피 수수 같은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씨를 뿌려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농사짓는 땅 근처에 머물며 움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정착 생활을 하다 보니 사냥을 위해 굳이 동물 찾아 삼만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고기 맛을 보았고,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동물을 산 채로 잡아 와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직접 키우기 시작했다. 정착 생활로 인해 목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시작된 농경과 목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개량된 도구가 필요했다. 땅을 파고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 돌낫과 돌보습을 만들었고, 곡식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갈돌과 갈판을 제작했다. 그리고 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하거나 곡식을 저장하고 토기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석기시대에 농사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토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빗살무늬 토기이다. 토기 표면에 나뭇가지나 동물의 뼈를 이용해 빗살을 새겨 놓았는데, 이 무늬를 보고 학자들은 빗살무늬 토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빗살무늬 토기는 토기 표면에 힘들게 빗살무늬를 새겨 놓았는데 이를 두고 학자들은

토기의 빗살에 두 가지 기능이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한 가지는 토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고, 또 한 가지는 빗살무늬가 햇살을 상정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 밖에도 단순히 장식을 위해 새겼거나, 음식을 조리할 때 불이 토기 내부에 더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해 새겼다고 추측한다.

빗살무늬 토기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뾰족한 바닥이다. 바닥이 뾰족하면 어디에도 쉽게 놓을 수가 없었을 텐데, 왜 당시 사람들은 굳이 바닥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고기잡이를 위해 물이 있는 곳, 즉 강가나 바닷가에 주로 살았다. 강가나 바닷가 땅은 대부분 모래나 진흙으로 이루어져 단단하지 않다. 이런 곳에서는 그릇 밑을 뾰족하게 만들어 땅에 꽂아서 쓰거나 깊이 묻어 놓고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그렇다고 신석기 시대 토기가 모두 바닥이 뾰족한 것은 아니다. 산지나 구릉지에서 발견되는 토기는 바닥이 평평하다. 그러고 보면 신석기 시대 사람들도 각자 사는 곳의 환경에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맞추며 적응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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